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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리더십과 성격특성
  • 작성일 : 2018-04-13
  • 조회 : 1257

충무공 이순신의 리더십에는 성격특성 중 강한 통제성이 반영되어 있다. 이순신은 융통성이 없어 보일 만큼 철저히 원칙에 따라 행동했다. 그가 발포 만호였을 때 직속상관인 전라좌수사가 거문고를 만드는 데 쓰려고 발포 관아에 있는 오동나무를 베려하자 개인적 일에 관아의 수십 년 된 나무를 자를 수 없다고 거부했다. 그가 정무관으로 한양서 근무할 때 병조판서 김귀영이 자기 서녀를 첩으로 주려 했으나, 이순신은 권문세가에 결탁하여 출세를 도모할 일이 아니라며 매파를 돌려 보냈다. 유성룡이 이이에게 그를 소개해 만나보길 권했으나 덕수 이씨 종씨로서 율곡이 인사권을 가진 이조판서일 동안은 만날 수 없다며 거절했다. 이순신은 자기 경력과 관리 영역 안에 어떤 타인이라도 사리에 맞지 않게 개입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지역 사령관으로서 이순신은 통제적 리더십을 통해 허물어졌던 조선 수군의 군기를 잡았다. 임무를 소홀히 한 군사들을 곤장으로 다스렸고, 탈영자와 거짓 소문으로 민심을 어지럽힌 백성의 목을 가차없이 베었다. 첨사나 만호 같은 영관급 장교들도 잘못하면 처벌했다. 1592년 시작된 7년 전쟁 동안 그가 난중일기에 기록한 여러 형태의 징벌 기록은 110여회에 이른다. 한편, 그는 전공을 세운 부하 실명을 장계에 올려 공로를 인정받게 했고 싸워서 이기는 경험으로 사기를 북돋우었다. 병조판서였던 이항복은 그의 저술, “백사집에서 이순신이 일을 당해서는 과감하게 처리하여 조금도 굽히지 않았으며, 사람들에게 형법을 주고 상을 주는데 있어서는 일절 귀세(貴勢)나 친소(親疎)에 따라 차별하지 않았다라고 평가했다. 가문이나 빈부 차이, 개인적으로 친한 정도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은 원칙 중심의 리더십이었다.  전란 속의 혼돈과 공포 가운데서 법과 원칙을 지키기 위해 이순신을 통제성을 강하게 띤 리더십을 발휘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 남해안 백성들이 왜구로부터 목숨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은 이순신이 지휘하는 수군의 주둔지 가까이 있는 것이었다.  이순신이 백의종군하며 망가진 수군의 병력과 물자를 추스릴 때 장졸들과 백성들이 그에게 모여들었다.  

전란 속의 혼돈과 공포 가운데서 법과 원칙을 지키기 위해 그의 리더십은 통제성을 강하게 띨 수 밖에 없었다. 당시 남해안 백성들이 왜구로부터 목숨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은 이순신이 지휘하는 수군의 주둔지 가까이 있는 것이었다. 이순신이 백의종군하며 망가진 수군의 병력과 물자를 추스릴 때 장졸들과 백성들이 그에게 모여 들었다.  ​이순신에 대한 백성의 심리적 의존은 360년 뒤 한국전쟁 중에도 나타났다. 북한군의 공세에 밀려 내려오는 피난민들을 보며  남해안 경남도민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을 보탠 기금으로 전시 정부는 1952년 진해시에 임진왜란이 일어난 일자, 4 13일에 맞추어 이순신 동상을 세웠다. 해군통제부(해군기지본부)로 들어가는 길목 로터리에 선 충무공 동상을 돌아보며 젊은이들은 임지로, 전선으로 나아갔다. 해병훈련소가 진해에 있을 시절에는 훈련과정을 마친 해병 신병들은 처음 받았던 세무 군화를 조여매고 동상 앞으로 행진해 가서 장군에게 묵념을 올렸다.  조선 수군의 후예로서 장군에게 신고식을 하는 이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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